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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 등재기준 창덕궁 역사

by 그대 곁에 머물다 갑니다 2023.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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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 등재기준 창덕궁 역사

◎ 왕이 사랑한 창덕궁


 <창덕궁은 조선왕조 제 3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주요 궁궐전각이 완성되었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 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 2천 평이던 후원을 넓혀 15만여 평의 규모로 궁의 경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40년(1607)에 중건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5년(1613)에 공사가 끝났으나 다시 1623년의 인조반정때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궁궐전각이 소실되었다가 인조 25년(1647)에 복구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화재가 있었으며, 1917년에 대조전과 희정당 일곽이 소실되어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 강녕전 등 많은 건물을 철거하여 창덕궁으로 이건하였다.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 때부터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펴 온 법궁이었다. 창덕궁 안에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장소로 쓰이던 인정전, 국가의 정사를 논하던 선정전 등의 치조공간이 있으며, 왕과 왕후 및 왕가 일족이 거처하는 희정당, 대조전 등의 침전공간 외에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는 매우 넓은 공간을 후원으로 조성하였다.

정전 공간의 건축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여 높게 하였고, 침전건축은 정전보다 낮고 간결하며, 위략공간인 후원에는 자연지형을 위압하지 않도록 작은 정자각을 많이 세웠다.
 건물배치에 있어 경복궁에서는 정문으로부터 정전, 편전, 침전 등이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궁궐의 위엄성이 강조된 데 반하여, 창덕궁에서는 정문인 돈화문은 정남향이고, 궁 안에 들어 금천교가 동향으로 진입되어 있으며 다시 북쪽으로 인정전, 선정전 등 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편전과 침전은 모두 정전의 동쪽에 전개되는 등 건물배치가 여러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자연스런 산세에 따라 자연지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고 산세에 의지하여 인위적인 건물이 자연의 수림 속에 포근히 자리를 잡도록 한 배치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완전한 건축의 표상이다. 또한, 왕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던 후원은 300년이 넘은 거목과 연못, 정자 등 조원시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건축사적으로 또 조경사적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후원은 태종 5년(1405) 창덕궁을 창건할 때 후원으로 조성하였으며, 창경궁과도 통하도록 하였다.

 창덕궁 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조원 시설로서 자연적인 지형에다 꽃과 나무를 심고 못을 파서 아름답고 조화있게 건물을 배치하였다.
 대부분의 정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지금 남아있는 정자와 궁궐전각들은 인조 원년(1623)이후 개수, 증축된 것이다. 이곳에는 각종 희귀한 수목이 우거져 있으며, 많은 건물과 연못 등이 있어 왕과 왕비들은 이곳에서 여가를 즐기고 심신을 수양하거나 학문을 닦고 연회를 베풀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전통건축으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건축과 조경이 고도의 조화를 표출하고 있으며, 후원은 동양조경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인 조형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특징이 있다.

 창덕궁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궁궐지], [창덕궁조영의궤], [동궐도] 등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1830년경에 그린 [동궐도]가 창덕궁의 건물배치와 건물형태를 그림으로 전하고 있으며, 궁궐사와 궁궐건축을 연구 고증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창덕궁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문화유산적 가치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

 

등재기준 : 세계유산기준(II), (III), (IV)
(II)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내에서 건축, 기념물조각, 정원 및 조경디자인, 관련예술 또는 인간정주 등의 결과로서 일어난 발전사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유산
(III)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
(IV) 가장 특징적인 사례의 건축양식으로서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과학적, 기술적 혹은 산업의 발전을 대표하는 양식


◎창덕궁의 역사

 

1900년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
1990년~1999년 대규모 복원 사업(돈화문 월대, 낙선재 일대, 진선문, 숙장문 등)
1926년(순종20) 마지막 황제 순종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
1920년(순종14) 경복궁 일부건물을 옮겨 창덕궁 건물 재건
1917년(순종11) 대 화재로 침전 건물 소실
1910년 경술국치
1800년대 1882년(고종22) 창덕궁 관물헌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남
1882년(고종20) 창덕궁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남
1863년(고종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849년(철종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833년(순조 33) 대조전, 희정당 등 소실, 1834년 재건
1803년(순조 3) 인정전 소실, 1804년에 재건
1800년(순조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700년대 1776년(정조 즉) 2층 누각을 세워 위층에는 주합루, 아래층에는 규장각이라 함
1749년(영조 25) 대보단 중수
1724년(영조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704년(숙종 30) 후원에 대보단 건설
1600년대 1674년(숙종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659년(현종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649년(효종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647년(인조 25) 인조반정으로 소실된 건물 중건(선정전, 대조전, 희정당, 징광루 등)
1636년(인조 14) 옥류천 주변에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건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으로 창덕궁의 대부분 궁궐전각들이 소실됨
1610년(광해군 2) 창덕궁 중건을 완료하여 법궁으로 삼음
1500년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창덕궁에서 피난길을 떠나 의주로 파천, 경복궁과 창덕궁 등 모든 궁궐이 소실됨
1400년대 1494년(연산군 즉)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후원을 꾸밈
1468년(예종 즉) 창덕궁 수강궁 중문에서 즉위
1462년(세조 8) 민가 73가구를 철거하여 후원 확장
1461년(세조 7) 각 전당들에 이름을 지어 붙임
1456년(세조 2) 사육신 사건
1412년(태종 12) 돈화문 건립
1411년(태종 11) 금천교 건립
1406년(태종 6) 후원 조성
1405년(태종 5) 조선의 이궁으로 건설

 

 

창덕궁 동궐도 인정전 후원 태종 선종 헌종 고종 숙종 궁궐

창덕궁 동궐도 인정전 후원 태종 선종 헌종 고종 숙종 궁궐 ◎창덕궁 소개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1405년(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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